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립 마운트배튼 (문단 편집) ==== [[해군]] 복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02823EC-CA9B-4CFC-A3A1-2AE54182EF51.jpg|width=100%]]}}} || || '''1939년 12월 13일 라밀리즈(HMS Ramillies)에서[br] 사관 후보생 필리포스''' || 18살의 필리포스는 [[영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해군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1940년에는 [[콜롬보]]에 기항하고 있던 낡은 [[리벤지급 전함]] 라밀리즈(HMS Ramillies)를 시작으로 인도양에서 호주 병력 호송대를 호위했다. 당시 그리스는 중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필리포스는 전선에 나갈 수 없었다. 이후 [[카운티급 중순양함]] 켄트(HMS Kent) 및 슈롭셔(HMS Shropshire)에 배치되어 [[인도양]]의 영국 ~ 남아프리카 ~ 호주간 해상 교통로 호송 임무에 참여했다.[* HMS 켄트의 중위는 일지에 ‘오늘은 비가 많이 왔다. 다행히 필리포스 왕자가 사관생도로 있는데, 코코아를 정말 잘 만든다…’라고 적었다.] 1940년 6월에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그리스도 전쟁에 참여하자 필리포스는 전선에 나갈 수 있게 됐다. 따라서 1940년 말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지중해함대 소속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밸리언트(HMS Valiant)에 배치되어 리비아 포격, [[크레타 섬 전투]]와 [[마타판곶 해전]]에 참여했다. [[마타판곶 해전]]에서는 탐조등을 이용해 은밀히 접근하던 [[이탈리아 해군]] 함정들을 발견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한다. 마타판곶 해전에서 이탈리아 측 전투기가 없어 비교적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크레타 섬 전투에서는 독일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에서 잃은 전함 중 하나는 HMS 캘리로 필리포스의 외삼촌 [[루이 마운트배튼]]이 지휘했었다. 살아남은 마운트배튼이 필리포스와 만나자 필리포스는 마운트배튼이 기름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1942년 7월에는 대위로 진급하여 셰익스피어급 구축함 월리스(HMS Wallace)의 [[부장#s-3|부장]](副長)에 임명되었다. 윌리스의 부장이 다른 곳으로 배치되자, 필리포스는 그의 자리를 맡아 대위로 진급했다. 필리포스는 21살로 가장 어린 나이에 대위로 진급했다. 월리스는 주로 북해, 북대서양의 호송 임무를 수행하며 [[독일 공군]]과도 여러 차례 교전했고, 이후 1943년에는 지중해로 이동하여 [[시칠리아 상륙작전]]에 참여하였다. 시칠리아 상륙작전 무렵에는 추축국 공군의 야간 폭격을 받아 거의 격침 직전의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이때 필리포스는 선내의 나무들을 엮어 간이 뗏목을 만들고 여기에 연막탄을 피워 바다에 던지는 기지를 발휘 했다고 한다. 야간이라 정확한 식별이 어려운 상황에서 적 폭격기들은 이 뗏목을 적함으로 오인하여 무사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1944년에는 신조된 [[전시 비상계획 구축함|W급 구축함]] 웰프(HMS Whelp)의 부장에 임명되었다. 이 HMS 웰프는 북대서양 호송 임무를 수행하다가 [[독일 해군]]의 수상함 세력이 거의 소멸하자 동양함대(이후 태평양함대)로 전속되어,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는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항공모함/전함 호위 등 다양한 전투임무를 수행하다가 종전을 맞이하였다. 종전 후인 1945년 9월에는 [[일본의 항복]] 뒷처리를 위해 [[도쿄만]]에 파견되기도 했다. 이후 HMS 웰프는 [[홍콩]], [[호주]] 등을 거쳐 영국으로 귀환, 1946년 2월 [[포츠머스(영국)|포츠머스]]에 입항한다. 이로써 필리포스는 해군 장교로 6년여에 걸친 전시 임무를 완수했다. 5월에는 마타판곶 해전의 영웅 중 한명으로 인정됐다. 귀국해서는 육상 임무로 전환되어 윌트셔 주 코섐에 위치한 해군 부사관 통신학교 교관직을 수행했다. 1944년 12월 3일, 필리포스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가 사망했다. 아테네에서 살던 앨리스 왕자비는 동생 루이 마운트배튼을 통해 HMS 웰프에 있던 필리포스에게 소식을 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